러시아의 한국계 러시아인. 고려인

반응형

러시아 우수리스트 고려인문화센터

러시아의 한국계 러시아인


러시아에는 <<고려인>>이라고 불리는 사람들이 있다. 러시아어로는 российкие корейцы 라고 하는데 조선인이 아니라 고려인이라고 표현하는 것은 Coreana나 Korean의 음에서 온 것이라는 설이 있다. 한국인이 러시아에서 살기 시작한 것은 1860년대에 조선의 북쪽 지방에 심한 가뭄이 들어 연해주 지역으로 이주해 경작을 시작했을 때부터라고 한다. 그 이후 일제강점기와 2차대전 시기에 스탈린에 의한 강제 이주 정책으로 중앙아시아로 이주 당했고 지금까지 카자흐스탄이나 우즈베키스탄에 작지 않은 공동체를 이루어 살고 있다. 최근 몇 년 동안은 중앙아시아에서 다시 연해주 지역으로 이주하는 고려인이 늘어나고 있다. 고려인의 역사는 우리민족의 안타깝고 슬프며 매우 복잡하고 긴 역사 중에 하나이기 때문에 간단하게 논할 수 있는 내용은 아니다.


러시아에서 고려인 작가로 유명한 사람의 이름을 예로 든다면 Анвтолий Андреевич Ким아나콜리 킴이라고 할 수 있다. 강제이주 2년 후인 1939년 카자흐스탄에서 태어난 1971년에 모스크바 고리키문학연구소를 졸업하여 73년 등단한 뒤로 작품활동을 계속하고 있다.


대표작 중에 하나인 '다람쥐'(1982)는 다람쥐, 돼지 등 동물로 변신한 4명의 예술가를 통해 인간 내면의 속성과 구소련 예술계의 단면을 그린 것인데 현지 문단에서 격렬한 논쟁을 일으키키도 했다. 당시 마르코프 소련작가동맹 의장이 이 작품을 비판하는 연설을 하던 중 쓰러져 사망하는 사건이 발생해 서구에서 그의 이름은 더 유명해졌다. 그는 이 작품으로 2005년 톨스토이 문학상을 받았다.


그의 작품은 세계 각국어로 번역되고 있는데 국내에는 [켄타우로스의 마을][해초 따는 사람들][신의 플루트] 등 의 작품이 번역되었다. 또한 아나톨리 킴은 [춘향전]을 러시아어로 공역하기도 했다.
1980년대 소련의 젊은이들을 매료시킨 한 한국계 록음악 가수가 있었다. 당시 소련 정부는 록음악이 자본주의의 영향을 받아 젊은이들을 반항적으로 만들고 자기의사표현의 가치를 중시하는 경향이 있다고 하여 공연을 금지했다. 이 시기에 겨우 20살 나이의 Виктор Чой빅토르 초이는 혁신적인 가사와 음악으로 사회에 반향을 일으켰다. 빅토르 초이는 전쟁에 반대하는 가사와 능동적으로 국가를 변화시켜야 한다는 메시지를 담아 젊은이들에게 호소하였다. 그가 결성한 록크룹 <<Кино>>에서 유래된 키노마니아들이 생겨나기도 했다.


1990년 빅토르 초이가 사망한 이틀 후인 8월 17일자 잡지<<Комсомольская Правда콤스몰스카야 프라우다는 "빅토르 초이는 우리나라의 젊은이들에게 다른 어떤 정치인들보다도 중요하다. 왜냐하면 그는 한번도 거짓말하거나 자신을 팔아먹은 적이 없었기 때문이다. 그는 빅토르 초이였고, 그렇게 기억될 것이다. 그를 믿지 않을 수 없다. 대중에게 보인 모습과 실제 삶의 모습과 다름없는 유일한 록커가 빅토르 초이이다. 그는 그가 노래 부른대로 살았다. 그는 록의 마지막 영웅이다."라고 극찬하기도 하였다. 사망한 지 25년이 지난 지금까지도 빅토르 초이 기념 콘서트에는 10대에서부터 장년층까지 많은 청중이 함께 하고 있다. 

반응형

댓글

Designed by JB FACTORY